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헝거> 줄거리, 인간의 욕망, 감상평

by ykegirl 2025. 5. 17.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 포스터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Hunger)>는 태국 영화계가 선보인 강렬한 작품 중 하나로, 주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욕망을 고발하는 문제작이다. 미식이라는 화려한 소재 속에 감춰진 계급, 권력, 인정욕구, 정체성 같은 주제들을 매끄럽고 집요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단순한 요리 영화를 기대한 이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위한 요리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욕망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은 결국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영화는 아오이라는 한 젊은 여성의 여정을 따라가며, 인간이 가진 배고픔의 실체를 요리라는 행위 속에서 철학적으로 드러낸다.

<헝거> 줄거리 요약: 배고픔은 어디서 오는가?

아오이는 가족과 함께 태국 방콕의 번화가 근처에서 국수 식당을 운영한다. 아버지는 평생 국수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해 온 장인이고, 아오이 역시 그의 기술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아오이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요리를 더 잘하고 싶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던 중 아오이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유명 셰프 폴이 이끄는 고급 요리 팀 ‘헝거(Hunger)’의 부셰프인 톤이다. 그는 아오이의 요리에 놀라 ‘헝거’ 팀에 오디션을 제안하고, 아오이는 이를 수락한다. 오디션에서 그녀는 단순하고 거칠지만 본능적인 맛으로 폴의 관심을 끌고, 곧바로 팀에 합류한다.

하지만 ‘헝거’의 주방은 상상 이상으로 냉혹하다. 폴은 철저한 권위주의자이며, 주방 안에서는 오로지 능력과 복종만이 살아남는 기준이다. 그는 요리를 “상류층의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한 욕망 조작의 도구”로 규정하며, 셰프는 단순한 조리인이 아니라 ‘욕망의 연출자’라고 말한다.

아오이는 점차 이 세계에 익숙해지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한편, 가족과 점점 멀어지고, 자신이 요리를 왜 시작했는지도 잊게 된다. 영화 후반부, 그녀는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헝거 팀을 떠나 자신의 뿌리였던 가족의 식당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다시 국수를 끓이지만, 그 표정에는 이전과는 다른 평온함과 확신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아오이의 여정이 실패나 후퇴가 아닌, 진정한 자아로의 회귀였음을 상징한다.

인간의 욕망: 요리는 감정이 아니라 권력이다?

<헝거>에서 가장 강조되는 키워드는 ‘욕망’이다. 폴은 단순히 요리를 예술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요리를 통해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조종하며, 궁극적으로 그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그의 대표적인 대사는 다음과 같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욕망을 지배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요리는 단순한 생존 수단도, 예술적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약점을 노리고, 그 약점을 통해 권력을 얻는 수단이다. 폴은 부유층의 허영심, 권력자의 오만, 대중의 맹목적인 환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요리를 만든다.

아오이는 초반에는 그에게 반항하지만 점점 그의 철학에 물들어 간다. 처음에는 자신이 요리사로서 기술을 인정받고자 했지만, 점점 더 큰 자극을 좇고, 더 강한 명성을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의 욕망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확대되며,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질문한다. 아오이는 결국 이 질문을 직면하고, ‘욕망의 주방’을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영화는 이를 통해 욕망을 ‘억누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욕망의 방향과 본질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상평: 주방에서 철학을 끓이다

<헝거>는 겉으로 보면 미식 영화처럼 보인다. 음식은 화려하고, 요리 장면은 몰입감 넘치고, 배우들의 연기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극도로 건조하고 철학적인 사유가 존재한다.

아오이의 여정은 단순한 셰프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왜 요리를 시작했는지를 되돌아보는 과정이며, 성공과 정체성, 자존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내면의 여행이다.

특히 영화가 주방을 하나의 계급 공간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인상 깊다. 요리를 지휘하는 폴은 마치 군대 장성처럼 행동하고, 그 밑에 있는 요리사들은 일종의 병사처럼 긴장 속에서 일한다. 권위에 도전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이는 곧장 도태된다. 이 시스템은 현대 사회의 조직 문화, 회사 구조와도 닮아 있다.

아오이의 성장은 이런 구조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이탈이다. 영화가 말하는 진짜 ‘승리’는 그 구조를 뚫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나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폴 vs 아오이: 요리에 담긴 철학의 충돌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셰프 폴과 아오이의 철학 충돌에 있다.

- 폴: “요리는 힘이다. 권력은 고객이 아니라 셰프에게 있어야 한다.”
- 아오이: “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지 않아. 단지 그들이 따뜻하게 느끼길 바란다.”

이 두 철학은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의 극과 극이다. 폴은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진심도, 감정도 결국엔 소비된다고 믿는다. 반면 아오이는 요리가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영화는 이 두 사람 중 누가 옳은지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아오이의 선택을 통해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폴처럼 성공을 향해 자신을 태울 것인가?
아니면 아오이처럼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요리할 것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는 겉으로는 요리를 다루는 영화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허기, 그 허기는 과연 위장이 배고파서일까? 혹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비교당하지 않기 위한 불안,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오이의 마지막 선택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가 처음 요리를 좋아했던 이유를 떠올리는 행위이며, 세상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만족에 기준을 두겠다는 선언이다.

영화는 질문을 남긴다.
“당신의 헝거는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머릿속에 맴돈다. 그리고 그 여운이야말로 <헝거>가 단순한 미식 영화가 아닌, 철학 영화로 불릴 수 있는 이유다.